연혁

고안 이후의 데키주쿠

오가타 고안이 1862년 에도로 떠나서 그 다음해 그곳에서 숨진 뒤에도 양자인 오가타 셋사이(1834-1911)가 계속해서 데키주쿠에 살았으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1886년 경까지 학생들의 교육과 의료 활동을 계속했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데키주쿠는 여러 변천을 겪게되며, 1920년에는 오사카부가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게 됩니다. 1940년, 데키주쿠가 오사카부의 사적으로 지정되고, 이어서 1941년에는 "사적 오가타 고안의 구택과 사립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적 지정을 받은 다음, 오가타 가족과 관계자들은 데키주쿠를 보존할 최선책을 강구한 끝에, 1942년, 오사카 제국 대학에 그 건물을 기부하게 됩니다. 오사카 시가 8번이나 공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다행히도 데키주쿠는 전쟁동안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데키주쿠 기념회의 설립과 데키주쿠의 보존 및 기념 활동

전후의 혼란상이 다소 잠잠해진 1952년, 당시 오사카 대학 총장이었던 이마무라 아라오 박사의 지도 하에 데키주쿠 기념회(데키주쿠 기넨카이)가 설립되었습니다. 오사카 대학 총장을 회장으로 하는 기념회는 대학 내외 모두에서 회원을 모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념회의 목적은 고안과 데키주쿠 학생들의 업적을 기념하고 오사카의 근대 문화를 연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념회의 발족식은 1952년 11월 5일, 대학 내외 관계자들을 초청한 가운데 데키주쿠에서 열렸습니다. 발족식과 더불어, 강연회 및 참고 자료 전시회도 개최되었습니다.

또한, 1964년에는 데키주쿠가 국가의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로부터 노후에 따른 데키주쿠 건물의 열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2년에는 오사카 대학 데키주쿠 관리운영 위원회가 설립되어, 데키주쿠의 보존과 관리 그리고 데키주쿠 정신의 더 큰 발전을 위해 대학 범위로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데키주쿠 건물은 시가지의 낮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변 도로 환경과 방화 대책 시행에 곤란함 등을 들어 건물을 이전하자는 계획도 한편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계획은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데키주쿠 기념회와 데키주쿠 관리운영 위원회가 협력하여, 데키주쿠 건물을 현재의 위치에 보존하고 그 주위에 공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또한, 1976년에 시작된 개축 공사가 5년에 걸쳐 실시되었습니다. 1980년, 개축 공사 완료 기념식이 거행됨과 동시에, 데키주쿠는 일반 관람을 위해 개방되었습니다. 1981년 데키주쿠 사적 공원화 사업에 의해 데키주쿠 동쪽 인접지에 공원이 완성되었고, 뒤이어 1986년에는 데키주쿠 서쪽 인접지에도 또다른 공원이 완성되었습니다. 데키주쿠 기념회는 위에 언급한 데키주쿠 보존 활동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데키주쿠는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내진 보강 작업을 위해 부분적으로 재건축되었습니다. 본 데키주쿠 내진 보강 재건축 공사는 국가의 중요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신기술을 적용한 선구적인 사례로서 기억될 것입니다. 이 재건축 공사를 함으로써, 데키주쿠를 보존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새롭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데키주쿠 기념회에 의한 연구 활동의 진행

기념회는 발족한 이래, 데키주쿠 관련 자료를 모으거나 그러한 자료의 기부를 요청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실행해 왔습니다. 오사카 대학 교수인 후지 나오모토와 후지노 쓰네사부로가 중심이 되어, 그때까지 수집 및 기증된 자료들을 편집하여 "오가타 고안과 데키주쿠"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화보록을 1953년에 간행했습니다.

기념회가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계속하고 있는 사업이 몇가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데키주쿠 기념 강연회(1955 ~, 1964 ~ 1971년 중단), 기념회의 회지인 "데키주쿠" 간행(1956 ~), 그리고 문하생에 대한 조사 자료(데키주쿠 몬카세이 초사, 1960 ~) 발행 등 입니다. 1960년에는 오가타 고안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문하생 조사 사업이 실시되었습니다. 이 조사에 대한 결과가 두 개의 보고서로 작성되어 1963년(1968년 개정)과 1973년 각각 간행되었습니다. 이 두 보고서의 간행 후에도 주로 오사카 대학 교수인 시바 데쓰오 박사에 의해 문하생 조사가 계속되었습니다. 1963년에 기념회는, 고안 사후 10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서 기념 강연회를 개최하고, "고안과 1,000명의 젊은이들"이라는 영화를 제작했으며, 오사카 시립 박물관에서 오가타 고안전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에는 오가타 도미오 박사가 일본 전역에 산재한 고안의 편지를 수집하여 서간집을 편집하고, 거기에 해설과 평론을 더하자는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기념회도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해 협조하여, 마침내 오가타 도미오 박사와 데키주쿠 기념회는 "오가타 고안 노 데가미"(오가타 고안의 편지) 제 1권과 제 2권을 공동으로 편집하여, 1980년에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오가타 도미오 박사의 사후에는 오사카 대학 교수인 우메타니 노보루가 이 서간집 사업을 이어 받아 서간집 제 3, 4, 5권을 완성하고, 곧이어 오가타 도미오 박사, 우메타니 노보루 교수 및 데키주쿠 기념회 공동 편집으로 간행했습니다. 서간집에 실린 고안의 편지 252통 중에는 그의 학생, 가족 및 아내인 야에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러한 편지는 고안과 데키주쿠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가 되어 왔습니다.

2006년에는 오가타 고안 젠슈(오가타 고안 전집)를 오가타 고안 전집 편집 위원회의 편집으로 간행하는 사업이 계획되었습니다. 그 첫 권과 두번째 권으로서, 고안의 주요작인 "후시케이켄이쿤"(부씨경험유훈)(후펠란토의 "의학필휴")이 간행되었습니다. 이들 두 권은 오사카 대학 명예교수인 시바 데쓰오 박사의 교정으로 재간행 되었습니다.

데키주쿠 기념센터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성취된 이러한 장기적 연구 성과를 계승함과 동시에, 데키주쿠 기념회와 공동 작업도 계속해서 이어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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